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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전파 및 발달

제제one 2021. 12. 14. 14:33


커피의 기원에 대한 연구도 재미있지만 커피가 각 나라에 어떻게 전해졌는가를 살펴보는 일도 매우 흥미롭다.
나라마다 커피의 전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들은 사실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기보다는 그저 낭만적인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브라질에 커피가 전해진 사연은 로맨틱하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 부인이 화려한 꽃다발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을 내리게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롬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 조건위에서 잘자라 두 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한편 사라센 제국이 분열되고 있을 무렵 유럽인들은 십자군을 조직하여 이슬람 세계로 원정을 보낸다. 이때 십자군 병사들은 처음으로 이슬람교 지역에서 자유롭게 커피를 향유하게되지만 유럽에서는 이교도의 음료라 하여 자유롭게 마실수없었다. 그러나 십자군원정 이후 르네상스시대라는 문예부흥운동으로 접어들면서 근대정신에 눈을 뜬 유럽인들은 종교적 교리로 인하여 이교도의 음료로 낙인찍힌 커피에 대해 관대해지게 된다. 더욱이 당시의 시인, 화가 등이 커피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기도해서 그야말로 커피는 ‘시인에게 영감을, 음악가에게 악상을, 철학자에게 진리를, 그리고 정치가에게 평화를 전한다’고 찬미할 정도였다.

한편 아랍의 약으로 알려진 커피가 마침내 유럽에 소개됐을때 커피는 온갖 병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소개되었다. 유럽인들은 나중에야 비로소 아랍인들은 약효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것이 아니라 커피의 향을 즐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후로 유럽인들은 커피를 마시기 좋은 형태로 발전시켰는데, 그때 아랍은 이미 원두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아랍인들은 그들의 커피를 지키기 위해 싹이 터서 발아할 수 있는 종자의 반출을 막고, 열매를 끓이거나 볶아서 유럽행 배에 선적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은 커피 농장 방문이 금지되었으며, 호주머니에 몰래 원두나 묘목을 숨겨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시 당했다. 그러나 메카로 가는 순례자들은 원두를 가지고 나오기도 하였다.

1616년 마침내 네덜란드의 한 상인이 인도의 순례자로부터 원두를 입수해 그것을 유럽으로 밀반출했으며, 이후 70년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의 플랜테이션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커피는 네덜란드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되었다.

프랑스에 커피나무가 전래된것은 1714년 암스테르담 시장이 루이 14세에게 커피나무를 선물한 때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할 수 있었던것은 노르망디 출신의 젊은 군인 끌리외의 애국적 정열 덕이었다. 루이 14세의 정원에서 커피묘목 몇 그루를 구한 그는 자신이 근무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한 곳인 마르티니크으로 향했다. 항해 중 자신에게 할당받은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뿌려주며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에 옮겨 심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나무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게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것이다. 다행히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알고있었다. 그는 이슬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알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 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영국에서 커피마시능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개 이상의 커피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있능 커피하우스들도 있었다. 어떤 커피하우스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증서, 주식을 살 수도있었으며 때로는 흑인, 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 도 있었다.

프랑스의 카페는 번창속도사 영국에 미치지못하였다. 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식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급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하도록 하였다.

또 다른 한편, 북아메리카에 카피가 전파된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다(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한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러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버린것이다. 미국 독립전댕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에 커피가 보편화되었다.

한편, 동양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것은 1878년경 일본에 들어온 것이 시작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다. 그리고 1690~1699연 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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